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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일본소설] 인간실격 감상

더스토리 미니북 오리지널 초판본 디자인판

 

'모든 인간관계는 제게 그저 고통만 줄 뿐이고, 그 고통을 덜어보겠다고 열심히 더 광대짓을 하다가 기진맥진 녹초가 됩니다.' p107

' "그리고 삶은 비극이지." "아냐. 그것도 희극이야." ' p145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이다. 이 소설을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다자이 오사무는 자살했다고 한다. 엄청나게 팔린 책이고 유명한 소설이라 큰 기대를 했지만 생각과는 좀 달랐다.

[ 읽지 않으셨다면 스포일러가 많으므로 제 감상을 읽지 않기를 추천드려요. ]

요조는 하인을 수십명 데리고 사는 좋은 집안에서 잘생긴 외모와 좋은 지능, 그리고 예능의 끼까지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것 뿐이었다. 요조는 마지막까지 가지고 태어난 것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못했고 믿지 못했다. 그런 잘난 집안에서 태어나 사람들이 서로 눈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뒤에서 험담하는 이른바 처세술 같은 것을 보면서 인간불신에 빠졌고 요조는 계속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신뢰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며 살다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서 완전히 무너져버린다.

다자이 오사무의 일생을 담은 자전적 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내용 자체는 후기에서 오사무가 마담에게 얻게 된 요조의 수기 3편과 사진 3장을 받아들고 쓰게 된 요조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처럼 나와있지만 그렇지 않고 오사무의 완전 창작이라고 한다. 나도 후기를 읽고 요조란 인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줄 알았다.

'한마디로 모르겠는 겁니다. 주변 사람들의 고통이나 성질을 도무지 짐작조차 못하겠는 겁니다. ..... 생각하면 할수록 더 알 수가 없어져서 저만 돌연변이인 듯한 불안감과 공포감이 엄습합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니까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광대 짓이었습니다.' p16~18

인간관계에서 지친 사람들이 요조의 인간불신적인 측면에 많이 공감해 후유증을 느끼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지만 그 생각 만큼은 나 또한 어느 정도 공감했지만 읽다가 의아해질 정도로 단순히 주인공인 요조를 동정하기에는 요조는 잘생긴 외모와 말재주로 여러 사람들을 끌어들여 상처주었고 결국 마지막까지 본인만 생각하다 자조에 빠져버린다. 그 사람들은 대게 여자들로 요조의 무엇에 빠졌는지 요조가 스스로 왜 그랬는지 묘사를 하기도 하지만 나는 여자들이 잘난 요조의 배경과 외모에 말재주 그리고 별난 행동으로 어떨 때는 백마탄 왕자님 같은 느낌을 받고, 어떤 때는 돌봐주고 싶은 모성애를 발휘해서라고 생각한다.

요조는 여러 여자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살아간다. 친구인 호리키는 그를 색마라고 부르며 그런 요조를 비웃는데 요조는 속마음으로만 부정한다. 요조의 입장에선 그저 여자들이 먼저 내민 손을 잡았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요조의 안에는 요조가 너무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었고 어떤 여자도 요조에게 닿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여자들을 그렇게 생각했을 리 없다. 요조의 처가 되는 요시코는 요조를 놀라게 하며 마음을 뺏지만 소설에서 바람을 피우는 건지 강간을 당하는 건지 정확히 묘사하지 않는데 결국 그 경험으로 요조는 요시코에 대해 완전히 마음을 잃는다. 왜 요시코가 강간을 당했는데 요조가 신뢰를 운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요조는 워낙 신뢰라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고 요시코와 결혼할 당시 요시코의 처녀성과 그것에 연결되는 것에 의미를 뒀고 요시코가 다른 사람에게 범해졌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끈이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으로 해석했다. 또는 자주 출입하던 사람에게 아내가 범해졌다는 것이 충격이었다든가.

신뢰나 인간의 격을 논하기보다 일종의 요조의 여성편력 일대기라고 부르는 게 더 맞을 듯 싶은 이야기인데.. 그는 부모에게 다달이 용돈을 받으며 나쁘지 않게 생활하다 비행에 빠져 지원을 잃고는 완전히 여성에게 기대며 산다. 그 이전에도 그의 인생은 여러 여자들을 만난 경험으로 채워져있다. 지원을 잃게 된 것도 쓰네코란 여자와 동반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요조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세상에 실망하고 두려워했지만 그에게 세상은 사실 그 정도로 가혹하지 않았고. 점점 상황을 악화시키는 건 요조 스스로였다. 요조가 너무 약한 게 어렸을 때의 경험이 증폭되고 주변에 의지하지 못하고 전부 속안에 가둬둔 것 때문인지 몰라도 요조에 공감하기란 어려웠다.

다만 요조가 얼마나 삶에 지쳐있는 가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 불신에 대해서는 나 또한 힘든 경험을 할 때의 일들이 그의 경험에 겹쳐볼 수는 있었다. 요조를 요즘 세상관으로 보면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제멋대로 살다 또 마지막까지 제멋대로 가버린 그냥 푼수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요즘은 자기자신의 상황은 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 속 동굴처럼 여기면서 자신보다 더 나은 상황의 사람에게는 아무렇지않게 가혹한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어린 사람에게, 흙수저들은 상대적 금수저에게, 못난 사람은 잘생긴 사람에게, 너는 나보다 낫다느니 노력을 하면 된다느니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의 상황도 모르면서 떠들길 좋아한다. 이게 시대와 상관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sns과 인터넷으로 사람과 사람이 실제로 맞대지 않아도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여서 더 조심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두가 모두의 고난이 있고 말 못할 슬픔이 있다는 게 진짜 이 소설을 읽고 깨달아야 할 점이 아닐까. 나 또한 요조의 행동에서 그저 바보 같은 인간이라고 여기다가 깨닫고서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참 부끄러운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p12

요조가 스스로 자술하듯 요조의 일생은 남에게 들려주기에는 부끄러운 생애였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남에게 치부를 보이지 않은 채 자신의 비극만을 납득시킬 수 없고, 그 비극조차 온전히 공감받기 힘들다. 요조의 어떻게 생각하면 복받은 점들을 보고 어떤 독자는 단순히 요조를 폄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조가 받은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 스스로가 받은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이해시킬 수 없는데도 그에게 가혹하게 굴고 그를 이해하려고 해보지 않는다면 우린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고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아는 요조는 정말이지 순수하고 재치 있고, 술만 안마셨더라면, 아니, 술을 마셨어도... 천사처럼 착한 친구였지." p18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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