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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국소설][추리소설]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감상 (스포일러)

 

 

피터 스완슨 저의 추리(미스테리) 소설입니다.

 

저는 처음 살 때 이게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이라는 주제로 여덟 건의 단편 소설을 엮어낸 책인 줄 알았고 어제까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여덟 건의 기존의 소설을 인용하는 하나의 소설입니다.

 

옛날에 샀다가 오랫동안 극초반 30페이지 정도 읽고 던져뒀다가 이틀만에 다 읽어냈습니다. 흡입력은 좋네요.

 

개요는 대충 올드데블스라는 서점을 운영하는 주인공 맬에게 FBI가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주인공이 써놓은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이라는 서점 블로그 글을 모방해서 살인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라는 것이 요지.

주인공은 FBI 요원에게 협력하면서도 자기 방어를 위해 숨길 것은 숨기는 지극히 정상적인 대응을 합니다. 물론 억울한 상황에 몰리면 안되니까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백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이미 몇 년 전 사람을 살해한 전력이 있다는 걸 독자에게 폭로합니다. 그러나 '본건의 살인은 자신이 저지른 것이 아니다'라고 독자에게 항변하지요.

 

감상은 통쾌? 아니 청천벽력 같은 반전을 계속 예고하는 느낌에 조금 허무한 쓴맛이 느껴지는 결말이었네요.

저번에 읽은 머더하우스도 그랬지만 이 소설도 마지막에 땡처리식으로 진실을 와다다 쏟아내는 느낌.. 추리소설이 대체로 그런가요?

아, 분명 재밌는 소설이고 흡입력이 대단합니다. 머더하우스랑 달리 이틀만에 순식간에 다 읽었습니다. 여러 서술 트릭과 전개적 장치를 넣어놔서 반전이라는 요소도 작용을 하구요. 그치만 제가 꼼꼼히 안읽어서인지 아니면 추리력이 부족해서인지 많이 허무하단 느낌을 받았네요.

그렇지만 결말 자체는 여운이 강했습니다. 추리소설의 결말 치고는 식상하다는 평도 있지만 어느 부분에선 만족스럽고 어떤 부분에선 소름끼쳤고 특장할 만한 점은 추리소설 자체의 진실보다 '나 자신의 결말'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 있어요.

물론 저만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어떤 면에서는 데스노트나 이 작가의 전작처럼 어느 정도 죽어마땅한 사람을 죽인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부분을 파고드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추천 ★★★★☆

참조된 소설을 모르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 흡입력이 좋아 쉬이 읽을 수 있다. 결말에 맘에 안드는 점도 있지만 이정도면 충분히 준수하다! 저 같은 추리미스테리소설 초심자에게 추천!!


이하는 스포일러

(읽으신 분들만 이해 가능합니다)


결말에 대한 생각 

 

이 소설은 다른 소설을 인용하는 소설 답게 여러가지 추리소설이 작중에 등장합니다. 저는 그 소설들을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큰 흐름을 파악하는데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물론 다 알고 읽는다면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초반부터 '화자가 범인인 소설이 있었다' '화자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으면 안된다' 등 여러가지 복선을 장치해둡니다. 게다가 중반부터 밝혀지는 주인공의 범행폭로까지 결국 독자는 주인공을 믿을 수 없게 되지요.

분명 장치는 그랬을 텐데 저는 반전만 기대할 뿐 일단 주인공의 서술을 그대로 믿으며 따라갔습니다. 일일이 의심하기도 성가시고 귀찮으니까요. 대체로 주인공은 '찰리'라는 범인을 착착 추적할 뿐 별개의 범죄는 저지르지 않습니다.

 

아래는 읽으신 분들만 이해할 내용.

 

허무점 1.

프루이트 그리고 브라이언과 테스라는 찰리로 의심되는 인물들의 전개상 불발탄적인 마무리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인데 프루이트는 주인공이 범인이라 의심해서 작중 많은 부분을 소모해서 따라가는 사람입니다만 그냥 찾아가보니 죽어있습니다.. 물론 클리셰적인 전개고 여기까진 별 무리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 오리무중으로 빠진 상황에 주인공은 갈피를 못잡고 독자인 저도 마찬가지.. 결국 그 이전에 잡은 약속따라 만난 브라이언과 테스 부부에게서 프루이트가 마신 술과 같은 브랜드가 있는 걸 보고 주인공 맬은 다짜고짜 그들 중 하나를 찰리라 의심합니다. 저는 단순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역시 무리가 있는 추리고 술에 취해서 테스에게 엉터리 추리를 마구 뿜어대는 주인공은 한심하기 그지없었네요. 당연히 이 둘은 범인이 아니고 그냥 알고지내는 별난 부부일 뿐..

실망한 포인트는 독자에게 반전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위기감을 주지 못했고 또한 주인공의 어처구니없는 행동들로 종막 즈음인데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 아니라 몰입감을 떨어지게 합니다..

 

테스 앞에서의 횡설수설은 어쩌면 주인공의 심리적 불안 상태와 이중인격이라는 요소를 집어넣은 걸 수도 있지만요..

 

허무점 2.

FBI들의 별 역할 없음..

처음부터 나오는 멀비 요원은 가족이 관련된 수사라는 이유로 중반부터 배제됩니다만 후에 나오는 대체요원들은 그냥 진짜 사무적으로 수사내용만 묻고 별 행동이 없습니다. 멀비처럼 이 사건에 집착해야 될 이유가 있는 건 아니라지만 진짜 한 번 주인공 앞에 나타난 것 이후로는 진짜 그냥 사라져버리네요..

 

허무점 3.

찰리(범인)의 정체가 나올 때 통쾌함이 없다. 주인공이 범인을 알아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찰리의 정체가 기발하다거나 놀랍다거나 너무나도 흥미롭다거나 하지 않다. 조금 쌩뚱맞다. 이 소설에서 가장 허무한 점입니다. 20세기소년이란 만화를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 만화에서 '친구'의 정체가 드러날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습니다. 엥?.. 애가..?

 

결말의 여운 & 내가 생각하는 진실

결국 이 소설에 여운을 주는 재밌는 점은 초장부터 예고하는, 주인공이 독자에게 진실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겠네요. 마지막 두 챕터 정도에서 다다다 쏟아내는 주인공의 '자백' 자체도 진실이라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마티 킹십이 '찰리'고 범인이라고 주인공은 서술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진짜 진실은 마티 킹십은 주인공이 독자에게 폭로하는 살인인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모방한 살인에서는 정말로 그와 협력한 익명인인지는 몰라도 주인공이 마티 킹십에서 뒤집어씌운 범죄는 전부 주인공이 했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주인공이 말하길 마티 킹십이 자신과 이니셜이 같은 것은 -주인공의 이름은 맬컴 커쇼- 본인의 실수고 예리한 독자는 여럿 범죄들은 전부 주인공이 행한 것이라 여길 것이라 자술하는데 이러면 앳웰 살인사건의 알리바이 성립이 말이 안됩니다. 그는 앳웰이 죽을 때 확실한 알리바이를 가졌으니까요.

 

즉 진실은 브라이언과 테스를 죽이고 여덟 건의 살인 중 《붉은 저택의 비밀》을 모방해 또 한 건의 완벽한 살인을 하려던 주인공을, 프루이트에 관한 정보 의뢰와 고양이 네로 건으로 주인공이 자신과 살인을 교환했던 그 사람이란 걸 확신한 마티 킹십이 주인공의 뒤를 잡아서 그를 경찰에 인계하고 자신도 자수하려고 했으나 주인공에게 총을 뺏기고 주인공이 마티 킹십을 죽인 뒤 멀비에게 거짓 진술을 하고 거짓 내용을 담은 책을 저술한 거죠.

 

자신의 설계로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하는 주인공이지만 이쪽이 더 아귀가 맞습니다. 마티 킹십은 전직 경찰이고 처음엔 살인교환을 했다고 쳐도 갑자기 변모할 이유가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을 직접 저술한 주인공보다 동기가 낮습니다.

 

막판에 얼렁뚱땅 자백하긴 합니다만 주인공은 클레어(부인)와 클레어의 중학교 선생님도 본인이 죽였다고 하니 앳웰을 죽이기 이전에도 이미 살인에 대한 브레이크는 박살난 상태였구요.

 

《 열차안의 낯선 자들 》 : 앳웰 채니 살인사건

 마티 킹십(혹은 프루이트)과 맬컴 커쇼는 서로 살인할 대상을 교환해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 ABC 살인사건 》 : 로빈, 이선, 브래드쇼 살인사건

 마티 킹십(혹은 맬컴 커쇼)는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 진짜로 죽일 1명 외에 2명을 더 죽이는 방법을 썼습니다.

이중 배상 》 : 빌 만소 살인사건

 빌 만소가 정해진 시간에 열차를 탄다는 점을 이용해 그가 열차에 떨어져 죽은 것처럼 위장

죽음의 덫 》 : 일레인 살인사건

 심장이 약한 일레인을 놀래켜서 살해

비밀의 계절 》 : 스티브 클린프턴 살인사건

 매일 같은 곳을 산책하는 스티브 클리프턴을 차로 치어서 살해

붉은 저택의 비밀 》 : 마티킹십을 죽이고 사라진 맬컴(주인공)

 브라이언의 집에서 피해자의 시체를 남겨두고 가해자로 보이는 사람이 사라짐

살의 》 : 니컬러스 프루이트 살인사건

 알콜 중독인데 술을 치사량까지 계속 마시게 해 살해당한 프루이트

익사자 》 : 익사로 스스로를 죽일 주인공

 책 마지막의 마지막 스스로를 록랜드 항구의 바다속으로 들어가게 해 자살할 것이라 하는 맬컴

 

이렇게 모든 살인이 완성된다. 

물론 좀 끼워맞춘 부분도 있지만 -붉은저택의비밀 살인 모방 이게 가장 애매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티 킹십이라면 하지 못할 8건의 살인의 완성을 어쨌든 맬컴 커쇼가 모두 한 것이라고 가정하면 완성된다.

마티에게 대부분의 살인을 떠넘기고 자신은 익사한다는 저술을 남김으로써 실제론 도망치지만 경찰은 맬컴이 익사해 사라졌다는 오인을 하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하는 술수를 부렸다. 그것이 마지막 살인.

 

모든 것을 맬컴 커쇼가 한 것이고 마티 킹십은 완전 창조한 피해자일 뿐이라면 열차안의 낯선자들의 모방은 엉터리가 된다. 겉모양새만 내는 것이 중요하다면 이런 일은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브라이언이 말했듯이 진짜 살인을 믿고 맡길 사람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므로 마티=맬컴 이 가장 유력한 진짜 진실이긴 하다. 무엇보다 마티에게는 채니 살인을 의뢰할 만한 그렇게 특이점이 보이지 않는다.

 

마티의 범죄 자술이 거짓이라는 것은 몇가지 허점을 맬컴 스스로가 자백하면서 변명하듯이 채워넣는다는 점 때문에라도 확실해보인다. 마티는 단순히 맬컴의 살인인격?이라는 것. 하지만 이러면 마티라는 존재가 완전 허구인지 아니면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것은 조금 재미가 없고 뻔하다. 그래서 주인공도 부정하는 것이고.

 

이런 점을 감안하면 (쓰다보니 앞에 쓴 내용과 괴리가 있지만)

가장 아귀가 맞는 진실은 클레어와 스티브를 차례대로 죽인 맬컴은 살인에 눈을 떴고 프루이트(또는 마티)와 열차안의 낯선자들의 살인을 모방했고 그 후는 마티킹십이 자술했던 대로 살인을 이어나간다. 내 추리로는 열차안의 낯선자들 모방 살인에서 마티는 동기가 약하고 프루이트가 동기나 상황이나 어울리므로 실제로 살인을 교환한 것은 프루이트로 보인다. 그런데 살인도구인 총기가 또 걸리는데 마티킹십은 경찰생활 중 습득한 총기를 이용해 앳웰을 죽였다고 하는데.. 프루이트도 총기수집가이긴 했다.

하여튼 끝내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을 완성하고 맬컴 자신은 익사했다고 저술해 사람들을 속임으로써 유유히 빠져나간다. 모든 범죄에서 완벽하게 결백을 얻어낼 순 없었지만 그는 마티킹십에게 대부분의 죄를 씌운 후 사라진다.

 

쓰다보니 눈치챈 게 니컬러스 프루이트의 성이 정신분석학으로 유명한 프로이트와 비슷한 것이 또.. 주인공이 마티와 맬컴이라는 이중인격이라는 장치 같은데 어차피 이런 전개 재미도 없으므로 치워버리자. 위의 진실이 더 아귀도 맞고 살인도 전부 성립한다.

 

또 마티와의 덕버그 대화는 블로그에 남긴 댓글도 자기가 썼다는 맬컴(주인공)의 자술처럼 꾸며낸 헛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마티에 대한 저술은 후반부가 통째로 거짓말인 것이다.

 

그럼 가명을 썼다고 놓인 마티 킹십은 실제로 어떤 인물인가. 아마 전직 경찰로써 주인공의 의뢰를 받고 니컬라스 프루이트를 조사했다가 사라진 채니의 고양이와 맬컴의 고양이인 네로와의 유사점으로 주인공이 일련 사건의 범인인 것을 알아내고 브라이언의 집에 있던 맬컴을 자수시키려고 하다 실패한 사람.

이라고 생각이 된다.

 

주인공은 마티킹십의 이름이 가명이라 밝혔으나 완전히 허구의 인물이라면 여덟 건의 살인 중 하나가 성립되지 않게 되며 (브라이언과 테스를 대신 죽었다면 성립하기는 한다) 그의 시체를 브라이언의 집에 남겨뒀다는 저술과 상충되게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의 참맛은 내가 한 것처럼 범죄자(맬컴)의 저술인 본책을 읽으므로써 진짜 진실을 상상해보게 되는 점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보다도 소설의 복선과 장치, 단서들을 더 잘 파악하시는 분들은 더 확연한 진실을 알아냈을 수도 있다. 소설이든 만화든 영화든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증대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미디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점을 재확인 시켜주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열린 결말을 싫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이런 미스테리 소설에서는 작가가 마지막에는 모든 진실을 남김없이 거짓없이 알려줘야 속이 시원한 사람으로써 이런 소설은 좋게 보면 상상력을 늘려주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아무 진실도 없는 그저 오리무중인 결말로 독자에게 씁쓸한 여운만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마치 카레나 색소가 많이 들어간 사탕처럼 혀에 진한 색을 남기는데 그것이 모두에게 달가울 수는 없고 누군가는 그것 때문에 맛있는 카레나 사탕을 아에 질색을 하며 꺼리기도 하는 것처럼 호불호가 있을 듯하다.

 

여운은 확실히 남는다. 하지만 그게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여운인지 답답함과 속앓이를 쌓게 하는 여운인지는 단언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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